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풍양 조씨 (문단 편집) == 5대파 == 시조 이후의 세계(世系)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까닭에 정확히 몇 세대가 지났는지 알 수가 없다. 그래서 3개의 계파가 각자 추적이 가능한 인물을 1세로 받들어 세계를 이어오고있다.[* 바꿔서 말하자면 억지로 없는 조상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는 말이다. 보통 양반 가문의 경우 가문의 위신을 높이기 위해 가상의 인물을 시조삼아서 그를 고관대작으로 소개하고, 그 인물로부터 시작하는 정확한 계보가 존재하는데, 풍양 조씨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. 조상을 알 수 없으면 알 수 없는 대로 냅두고, 고증 가능한 사람부터 1세로 족보에 기록했다. 이 때문에 조선시대사를 연구하는 학자인 에드워드 와그너는 한국의 족보 중 풍양 조씨 족보가 가장 신뢰도가 높다고 평했다.] 각 계파는 자신들이 한 할아버지(조맹)의 후손임은 확실히 인정하면서도 계보를 정확하게 따질 수 있는 기록이 전혀 없기 때문에, 족보는 함께 만들면서도 각각 독자적인 [[항렬자]]를 사용한다. 같은 이유로 어느 계파가 큰집(종갓집)인지 알 수 없으므로, 후손이 가장 번창한 전직공계를 족보에 가장 먼저 기재하고, 그 다음 평장사공파, 상장군공파 순으로 기록한다. 여담으로 풍양 조씨 전직공계, 평장사공파(남원공파), 상장군공파의 족보의 표제가 모두 풍양조씨세보로 똑같은데, 표제 앞에 한자로 적힌 숫자가 있는 게 전직공계이고, 상중하로 적힌 게 평장사공파, 표제 중간에 상장군이 들어가 있으면 상장군파로 구별된다. 순혈도가 상당히 높은 씨족이기도 하다. 애초에 인구가 그리 많지도 않았고, 그 얼마 안 되는 문중끼리 서로 연락이 잘 되었기 때문. 그래서 돈 주고 족보 사기 어려운 가문 중 하나였다.[* 계보를 고증할 수 없는 사람은 모두 별보(別譜)에 기록되었다. 부자관계를 증명하지 못해 별보에 기록된 경우도 많다.] 세도정치로 유명하니까 인구가 많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아니다. 풍양 조씨인 사람을 생각보다 꽤 보기 어렵다.[* 사실 세도정치라는 것이 대한민국 수립 이후 교육자들이 조선 멸망의 원인을 세도정치로 돌렸는데, 그것이 그대로 교과서에 기록되면서 대중들에게 세도 가문으로 알려진 것이다. 그 이전이나, 그 이후로나 특정 일파가 권세를 쥔 경우가 늘 있었을 뿐더러, 풍양 조씨는 [[신 안동 김씨]], [[반남 박씨]], [[연안 이씨]], [[달성 서씨]], [[풍산 홍씨]] 등과 더불어 그저 평범한 권세 가문 중 하나였을 뿐이다. 또, 당대 풍양 조씨 집안이 수천 가구가 있지만 권세 가문은 조엄의 후손인 몇 가구 뿐이었고, 가난한 풍양 조씨 집안도 많았다. 이는 풍양 조씨뿐만이 아니라 모든 가문의 공통점이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